2010년 11월 26일에 학원복음화협의회(학복협)와 청어람 주관으로 열린 포럼 “다원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무례한 기독교, 그리고 캠퍼스선교”에서 배덕만 연구위원이 발표한 글입니다. 2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1.

소위 “봉은사 땅밟기” 사건으로 한국교회에 또 한차례 거센 폭풍이 지나갔습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거룩한 명령이 타 종교에 대한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표현되면서,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파생되었습니다. 양 종교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심각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인 이유도 동일한 문제의식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며, 왜 이 사건이 심각한 문제일까요? 저는 이런 불행한 사건의 원인이 한국기독교 내에 뿌리깊은 근본주의적 속성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본주의 자체가 악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근본주의가 교회사에 남긴 긍정적 유산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근본주의의 배타적, 전투적 속성은 늘 분열과 갈등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번 봉은사 사태도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속성이 부정적으로 표출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사태를 근본주의와의 관련성 속에서 관찰하며,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탐색해 보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한국교회 내에 팽배해 있는 근본주의와 종교다원주의 간의 갈등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고,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2.

종교를 초월해서 근본주의 혹은 원리주의의 주된 특성 중 하나는 전투성(militancy)입니다. 아랍 테러리즘의 배후세력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이에 대한 미국의 반격을 강력히 지지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모두 자신의 적들을 향해 폭력적 공격성을 노출했습니다. 특별히, 이런 배타적 호전성은 타 종교와의 갈등구조 속에서 더욱 거칠고 폭력적인 형태도 드러납니다.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적 특성도 타종교에 대한 공포심, 배타적 태도, 그리고 무차별 공격 등으로 다양하게 표출되어 왔습니다.

종교사회학자 이원규 교수에 따르면, 한국사회는 기본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사회입니다. 1993년 현재 문화체육부에 등록된 기성종교는 28개, 개신교 교파는 168개, 불교의 종단 수는 39개, 그리고 신흥종교의 수는 393로 나타났습니다. 거의 20여 년이 흐른 현재에는 이런 통계가 더욱 다양하고 복잡해졌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간의 갈등상황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 갈등의 “우선적인 근원지는 바로 개신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1] 이 같은 종교다원주의 상황에 대한 합리적 인식 위에 종교간의 조화와 상생을 추구하는 대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 확대하려는 의도 속에, 갈등과 대립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중심세력은 구체적으로 누구이며, 이런 태도의 신학적 근거는 무엇일까요? 다시 한번 이원규의 분석을 인용하면, (1)유일신 사상을 가진 종교가 일반적으로 배타성이 강합니다. (2)교리나 신조, 혹은 신학에 있어서 이분법적 사고구조를 강조하는 종교일수록 종교적 배타성이 강합니다. (3)종교적 배타성은 선민의식 혹은 종교적 우월주의가 강할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2] 이런 특성을 분석한 후, 이원규는 한국교회의 종교적 배타성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타종교에 대한 적대감이나 거부감은 개신교 안에서도 소위 보수적인 교파들(예를 들면 예장 합동, 예장 고신, 침례교, 성결교)의 경우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종교성이 강할수록 종교적 배타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개신교인 가운데서 정통주의 교리를 잘 믿는 교인일수록, 스스로 믿음이 깊다고 생각하는 교인일수록,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는 교인일수록,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 교인일수록, 종교적 체험을 자주 하는 교인일수록 타종교에 대한 배타성은 더 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딜렘마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종교갈등과 나아가서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이른바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3]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와 타종교 간의 갈등은 다양한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경우로 훼불사건, 이슬람포비아, WCC 부산총회 반대 등을 거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훼불사건의 경우, 보수기독교와 불교 간의 갈등의 핵심적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이성적/광신적 기독교인들이 불상을 훼손하거나 사찰에 방화를 저지르고, 사찰 내에서 공격적 선교활동을 전개한 것 등을 포함합니다. 이런 불미스런 사건들은 그 동안 수 없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범인들은 개신교 신자들로 알려졌고, 경찰은 그들을 정신이상자로 규정하여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불행한 사건들의 배후에 타 종교에 대한 한국교회의 과도한 배타주의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관련된 사건일지 중 일부만 열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1989년 1월, 서대문구 홍은동 소재 옥천암에서, 한 기독교 신자가 석탑과 석등을 파괴하고 사찰문에 불교를 비방하는 낙서를 하고 도주함. (2)1998년 6월, 제주도 원명선원에서, 기독교인이 화강암 불상 750기와 삼존불을 훼손함. (3)2004년 8월, 부산 장림동의 용수암 법당 내에서 기독교인이 불단 위에 올라가 삼존불 중 아미타불을 바닥으로 밀어 불상의 머리와 몸통으로 두 동강이남. (4)2009년 4월, 전남 여수시 향일암 대웅전에서 한 기독교인이 알루미늄 파이프를 휘둘러 인등, 불상과 불전함, 받침대 등을 부숨. 이 사건의 범인은 “우상을 숭배하면 안 된다. 부활절을 앞두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우상숭배를 경고하기 위해 불상들을 부쉈다”고 진술했습니다.[4]

한국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갈등은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반면, 개신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최근에 급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종교문화현상입니다. 개신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소위 “이슬람포비아”(Islampobia)로 집약되어 분출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슬람은 한국사회에 낯선 종교였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오일달러, 중동축구 정도가 우리에게 알려진 아랍문화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911사건, 외국인 노동자의 증가, 이슬람의 선교전략에 관한 CIA 문건유출, 그리고 2008년 SBS에서 방송한 4부작 ‘신의 길 인간의 길’ 등이 한국교회 내에 “이슬람 쓰나미”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선교학자 전호진은 “무슬림이 한국 여성과 결혼하여 국내에서 이슬람 확장을 홱책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최바울 선교사는 “한국에 들어온 2만 명의 이슬람선교사들이 좌파세력과 연계해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이슬람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산하 5개 교단 선교부는 이슬람에 대한 공동대처방안을 마련했으며, 한국이란인교회는 이슬람 대처운동인 ‘4HIM’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5]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자, 한국교회의 선교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바로 알기 운동이 다각도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진보적 선교학자들은 이슬람포비아의 실체자체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6] 보수적 학자들은 이슬람 경계령을 선포하고 있으며, 중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이슬람과 무슬림을 구별하고, 국내에 들어온 무슬림들을 공포의 대상이 아닌, 선교의 대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7] 아무튼, 요즘은 이슬람포비아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

끝으로, 최근 한국교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것이 ‘2013년 WCC 부산총회’ 문제입니다.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이번 총회를 한국교회 전체의 축제로 삼겠다고 발표하자, NCCK와 WCC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보수기독교 내부에서 강하고 줄기차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보수교단들이 WCC와 부산총회 자체에 대한 반대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으며, 보수신학자들의 다양한 모임에서 WCC의 신학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들이 연속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이들이 WCC를 반대하는 대표적 이유는 WCC가 종교다원주의 혹은 종교혼합주의를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예장 고려총회의 성명서는 이런 입장을 명확하게 천명하고 있습니다.

오는 2013년 한국 부산 벡스코에서 WCC 제10차 총회 개최 뉴스의 보도 앞에 경악스러움을 금치 못한다. WCC는 기독교 이름을 가장하고, 공존, 평화, 환경, 인권, 하나됨(일치) 등의 모토를 사용하여 정통 기독교를 저해하는 이른 바 反성경, 反기독, 反교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에 본 교단 제59회 총회(2009. 9. 22)는 이를 한국교회의 사탄적 재앙으로 규정하고, 강력히 반대하고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8]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논쟁은 이미 1990년부터 한국신학계의 뜨거운 감자였으며, 2004년에 대광고 강의석 사건, 조용기 목사의 동국대 발언, 길희성 교수의 『보살예수』 출판 등으로 열기가 더해졌는데, 이번에 WCC 총회 개최로 절정에 오른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 보수기독교에게 종교다원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신학적/신앙적 아킬레스건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진보신학자들은 종교다원주의를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수용하면서 보수교회가 타 종교에 대해 보다 포용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요구합니다.[9] 반면, 보수진영은 타 종교와 문화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야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진리를 보수하기 위해선 배타적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에게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최악의 범죄입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가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1 이원규, 『한국교회 어디로 가고 있나』, 242.

2 이원규, Ibid., 251-54. 이원규 교수는 이런 이유 외에, 한국교회가 특히 종교적으로 배타적인 현실적 이유로, (1)한국교회가 지나치게 경쟁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성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2)한국교회(특히 보수적인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제국주의적인 서구 신학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3)한국교회의 반지성주의 성향이 종교적 배타성을 조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필자의 판단에, 이 세가지 현실적 이유는 보편적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과연 한국의 보수교회가 타 종교를 경쟁상대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선교대상으로 생각하는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현재 한국교회의 지배적 신학이 서구신학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한마디로 “제국주의적”이라고 규정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또한 한국의 근본주의자들을 반지성주의자로 낙인 찍는 것도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종교다원주의를 반대하는 중심세력이 보수 신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를 반지성주의로 규정하는것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김기현, “근본주의는 ‘시대와의 불화’를 빚었는가,” 『기독교사상』546(2004.6), 46-8을 참조하시오.

3 이원규, Ibid., 250.

4 “향일암서 훼불사건 발생 ‘경악’,” 『밀교신문』 (2009년 4월 13일).

5 “한국교회 이슬람포비아, 과장된 측면 많아,” 『베리타스』 (2009년 4월 20일).

6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이슬람포비아에 대해 “타당성이 결여된 일부 보수/근본주의 진영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Ibid.

7 아신대 이동주 교수는 무슬림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갖되, 이슬람과 무슬림을 구별하지 못함으로써 한국 내 이슬람의 팽창을 간과하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슬림, 두려움이나 적대감 아닌 사랑으로 바라봐야,” 『크리스천투데이』 (2010년 5월 7일).

8 “예장 고려, WCC 한국총회 개최 반대 성명,” 『크리스천투데이』 (2009년 9월 30일)에서 재인용.

9 종교다원주의를 지지하는 진보 신학자들의 입장에 대해선, “종교다원주의, 침묵하지 말고 씨름할 때,” 『크리스천투데이』(2005년 1월 21일)과 “주님의 역사하심에 경계선 긋지말라,” 『크리스천투데이』(2005년 1월 24일)을 참조하시오. 여기에서 감신대 이정배 교수와 한신대 김경재 교수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전장련의 선언은 종교다원주의 경고하는 예언자적 소리,” 『크리스천투데이』(2009년 9월 14일)에서 숭실대 김영한 교수는 보수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전임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