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과상황 2008년 4월호에 실린 배덕만 연구위원의 글을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인류역사에서 오랫동안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는 어려운 수수께끼였다. 중세에는 교회가 세상에 지적으로 군림하면서 과학이 교회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과학적 진리가 교회의 신학적 검열을 받아야 했으므로 객관적 진리를 제대로 밝힐 수 없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이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과학혁명이후 둘 사이의 관계는 극적으로 역전되었다. 신대륙의 발견, 만유인력법칙, 다윈의 진화론 등을 통해 과학은 종교의 감시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독자적 권위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교의 역할은 자꾸만 축소되었다. 종교적 명제와 과학적 발견이 충돌할 때, 세상은 더 이상 종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마저 자신의 진리를 보장받기 위해 과학의 눈치를 살피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런 역사를 배경으로 미국 복음주의와 과학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특별히 창조와 진화의 관계에 주목할 때, 우리는 왜곡된 역사,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관계, 그리고 그 속에 담겨진 수많은 신학적 논제들을 만나게 된다. 심각한 적대감과 치열한 전투의 현장으로 기억되어 온 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고, 무엇을 기억해야 하며, 또 무엇을 반성하고 고민해야 할까? 그 복잡하고 거칠었던 기억, 그러나 반복해서 다시 꺼내 볼 수밖에 없는 앨범 속으로 살며시 들어가 보자.

복음주의 신학과 과학은 어떤 길을 함께 걸어 왔는가?

미국 복음주의 내에서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공존해 왔다. 한쪽은 신학을 과학의 여왕으로 규정하고, 과학 혹은 과학적 방법이 신학의 진리를 입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양자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과학과 신학은 기본 전제와 출발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물과 기름처럼 융화될 수 없다고 그 관계를 부정했다. 이런 긴장 관계는 미국이 건국된 17세기부터 지속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미국 복음주의 내에서 과학과 신학, 혹은 이성과 믿음의 공존을 인정하는 입장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미국에서 복음주의와 계몽주의 간의 관계를 연구한 역사가 헨리 메이(Henry May)에 의해 보다 분명하게 설명되었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는 4가지 종류의 계몽주의가 존재했다. 첫 번째 유형은 뉴턴과 로크가 주도한 “온건한 계몽주의”로서, 질서, 균형, 그리고 종교적 타협의 이상을 추구했다. 둘째 유형은 “회의적 계몽주의”로서, 볼테르가 그 대표적 인물이었다. 셋째는 루소로 대표되는 “혁명적 계몽주의”로서,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려고 했다. 마지막 범주에 속하는 것은 스코틀랜드 상식철학에서 기원한 “교훈적 계몽주의”였다. 이것은 회의주의와 혁명에는 반대했으나, 과학, 합리성, 그리고 기독교 전통에 대한 18세기의 헌신을 계승하려 했다. 메이에 따르면, 복음주의는 이 4가지 계몽주의 가운데 “온건한 계몽주의”와 “교훈적 계몽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즉, 미국 복음주의는 온건하고 교훈적인 계몽주의 영향 하에 합리성과 과학적 사고를 적극 수용함으로써, 기독교와 과학 간의 상보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양자 간의 긴밀한 관계는 19세기 복음주의 교회 내에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예를 들면, 부흥사인 찰스 피니는 부흥을 일으키는 것과 곡물을 생산하는 것 모두 과학적이라고 주장했으며, 프린스턴 신학교의 벤자민 워필드 교수는 참된 과학이 결국 참된 종교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침례교도로서 19세기 초반에 미국 대학의 대표적 교과서를 집필했던 프란시스 웨이랜드(Francis Wayland)는 윤리학이 물리학처럼 과학이라고 주장했고, 이성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성경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뿐만 아니라 1854년에 루이스 그린(Lewis W. Green)은 “자연과학의 신학”이 “성경의 신학”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주장하며, 양자 모두 우리에게 현명하고, 자애롭고, 정돈된 우주의 통치자에 대해 말해준다고 설파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복음주의와 과학 간의 관계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부정적이지 않았다. 계몽주의의 영향권에서 살았던 18-19세기의 복음주의자들은 계몽주의의 긍정적 측면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자신들의 신학적 변증작업에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다. 그들은 과학에 대해 무지하지 않았으며, 과학 내에 담긴 부정적 요소들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리성과 과학적 방법론의 효용성을 정확히 간파하면서, 과학과 복음주의 신학 간의 창조적․상보적 만남을 과감히 추구했다. 때로는 부흥의 도구로, 때로는 윤리학적 토대로, 때로는 성서적 변증의 도구로 과학적 방법을 다양하고 탄력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