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28 (2026.04.14)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예수와 단종의 밥상: 우리가 기다리는 진짜 ‘왕’은 어디에 있는가

 

김상덕 교수(한신대학교 평화교양대학)

 

 

  1. 가장 연약한 왕이 보여준 가장 위대한 연대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 돌풍이 심상치 않다. 누적 관객 수 1,6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급 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 사극은, 화려한 궁중 암투나 영웅의 호쾌한 승리담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권력을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연약한 어린 왕, 단종의 비극적인 삶을 산골 마을 사람들의 담담한 시선으로 쫓아간다.

이 영화가 이토록 대중의 마음을 깊게 울린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뼈아픈 역사를 가장 밑바닥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과 연결해 낸 탁월한 연출 덕분이다. 극 중 단종은 비록 유배된 처지일지라도, 천한 신분의 백성들과 한 밥상을 마주하고 앉는다. 그리고 그들의 소소하고 고단한 삶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이 짧고 평화로운 ‘식탁 교제’를 통해 단종은 구름 위의 군주가 아니라, 약자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위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관객들은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이 어린 왕에게서 실패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짙은 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백성들이 왕의 죽음 앞에 신의를 지키고 오열할 때, 관객 역시 그 슬픔에 동참한다. 이는 오늘날 대중이 갈망하는 리더십의 본질을 시사한다. 대중은 더 이상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짓밟는 군사주의적 영웅만을 원하지 않는다.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 보일지라도, 내 삶의 비애를 알아주고 약자의 곁에 서서 기꺼이 눈물 흘려주는 ‘우리 편인 왕’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1. 스펙터클에 갇힌 부활절, 그곳에 예수는 없었다

 

대중이 대중문화 속 연약한 왕에게서 진정한 위로를 발견하는 사이, 정작 세상을 향해 가장 낮은 자의 서사를 선포해야 할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두 가지 모습으로 치러진 부활절 연합예배의 단상은 우리에게 뼈아픈 성찰을 요구한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부활절 퍼레이드’는 화려한 노래와 공연으로 채워졌고, 급기야 예수로 분장한 이가 타워크레인에 매달려 승천하는 퍼포먼스까지 연출했다. 승리와 영광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려는 거대한 스펙터클이었다. 한편, 여의도의 대형 교회에서 열린 예배에는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권력과 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거대한 공간에 힘 있는 자들이 모여 기득권의 연대를 확인하는 듯한 풍경이었다.

과연 이 두 현장에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한 ‘부활의 예수’가 머물 자리가 있었을까.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예수와 권력자들의 단상 위에는, 단종이 백성들과 나누었던 그 소박하고 따뜻한 ‘밥상’이 결여되어 있었다. 예수는 언제나 철저히 무력한 모습으로 세리와 창녀, 소외된 자들 곁에 머물렀지만, 오늘날 일부 교회는 자본과 권력의 중심부에서 스스로의 힘을 과시하는 ‘영광의 신학’에 매몰되어 있다. 세상을 구원하는 힘은 십자가의 역설적인 무력함에서 나오건만, 세상보다 더 강하고 화려해지려는 기독교의 모습은 대중이 진정으로 원하고 기대하는 종교의 본질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1. 화려한 과시를 멈추고 경청과 침묵, 공감의 자리로

 

이러한 씁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가장 낮은 곳에서 피어났다. 같은 시기 열린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부활절 연합예배”는 오늘날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인 ‘이주민’들의 삶에 주목했다. 언어와 제도의 장벽 속에서 철저히 소외된 이들의 고단함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 손을 맞잡은 이 예배야말로, 2천 년 전 예수가 보여주었던 진정한 ‘식탁 교제’의 재현이었다.

부활의 진정한 의미는 하늘로 솟아오르는 화려한 결과물이 아니라, 가장 깊은 절망과 고통의 자리에 함께 머무는 연대의 과정에 있다. 며칠 뒤면 세월호 참사 12주기를 맞이한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가족들과, 사회 곳곳에서 신음하는 수많은 약자들 앞에서 한국 교회가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하다.

이제 거창한 구호나 보여주기식 행사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 빈자리를 ‘경청과 침묵, 공감’으로 채워야 할 때다. 섣부른 위로나 화려한 퍼포먼스 대신, 상처받은 이들의 작고 떨리는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내어주는 ‘경청’. 감정을 강요하거나 정답을 제시하려 하지 않고 곁을 지키는 묵직한 ‘침묵’.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시혜적 동정이 아닌, 그들의 아픔을 나의 것으로 껴안는 진실한 ‘공감’ 말이다.

영화 속 영월 백성들이 단종의 무력함 속에서 진정한 왕의 모습을 보았듯, 세상은 교회가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약자들과 함께 울 때 비로소 그 안에서 부활의 진짜 생명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와 소외된 이웃의 ‘소박한 밥상’으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오늘날 한국 교회가 회복해야 할 단 하나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