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25 (2026.03.24)

 

개혁을 기억하는 방법, 저항

 

한수현 목사(청수감리교회)

 

흔히 마르틴 루터를 종교개혁가로 기억한다. 서구 사회의 일대 사건인 종교개혁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루터는, 개혁가이자 개신교 신학자로 역사 속에 깊이 새겨졌다. 교회사 연구자들은 루터의 개혁과 신학을 연구하고, 성서학에서는 루터가 읽은 바울 서신 해석을 검토한다. 루터가 남긴 여러 저작과 신학적 논문들은 개신교를 대표하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그러나 루터가 남긴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혁을 대표할 수 있는 유산일까. 루터에게는 분명 어두운 면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그의 반유대주의이다. 루터는 노골적으로 당시 독일 사회의 유대인들을 비난하고 혐오했다. 그의 행적을 변호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자료가 존재한다. 반유대주의뿐 아니라 그의 신학 자체도 근대 사회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있다. 루터의 두 왕국설은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을 전유했지만, 훨씬 더 세속 정부의 권력을 인정해 주는 정치적 서술이었다. 그의 정치신학은 농민 봉기를 반대하고 권력자들의 편에 섰던 루터의 선택과도 맞닿아 있다.

 

바울 신학에서도 루터의 바울 해석은 오래전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루터는 자신이 가톨릭에 대해 느꼈던 한계와 갈등을 바울에게 투영했다. 그는 바울을 당시 유대의 율법에 몸부림치던 인물로 그려 내고, 유대교를 버리고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 개종자로 이해했다. 이러한 루터의 해석은 이후 기독교가 스스로를 유대교의 한계를 넘어선 더 높은 종교로 여기는 단초가 되었다. 아울러 구약성서를 낳은 유대교의 신학과 해석의 맥락을 모두 율법주의적이고 열등한 종교로 치부하는 역사적 오류를 만들어 냈다.

 

인간은 누구나 역사적 한계를 지닌다. 그 한계를 무시한 채 한 인물을 보편적 논의의 장으로 여과 없이 끌어내면, 한계를 지닌 개인은 곧 전통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전통으로 굳어지는 순간, 전통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개혁을 받아들이지 않는 무엇이 된다. 루터도 자신이 반대했던 당시의 전통과 내용은 다를지라도, 결국 비슷한 방식으로 굳어진 체계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루터의 신학을 개혁신학이라 부른다. 그러나 신학이라는 단어가 전통의 옷을 입는 순간, 루터의 어두운 면은 버릴 수 없는 무엇이 되고 만다. 루터에 대한 비판은 개신교인에게는 자기 뿌리를 비웃는 모순으로 치부되기 쉽다. 인간은 영원이라는 시간을 소유할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개혁가는 현재의 전통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로 소환하려면, 그에게 붙은 간판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루터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해 주는 단어는 ‘저항’이다. 원래 개신교를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또한 ‘저항하다’라는 뜻의 ‘프로테스트’(protest)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루터는 개혁가나 신학자이기 전에 저항하는 사람이었다. 몸부림치는 자였다. 개혁은 과거 저항의 내용에 지나지 않는다. 저항의 내용만 응시할 때, 그 안에는 저항하던 루터의 모습은 사라지고 굳어 버린 고집스러운 전통주의자 루터만 남는다. 저항은 그 내용만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저항은 그 형식으로 해석해야 한다. 저항의 내용은 저항의 대상이라는 한계를 넘을 수 없다. 루터의 저항의 형식을 살펴보려 할 때, 우리는 루터의 말보다 오히려 루터가 저항했던 대상 자체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 당시의 역사와 그 역사를 이끌어 가던 전통의 주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찰나에 루터는 개신교 전통을 떠받치는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새로운 변화와 저항을 꿈꾸는 존재가 된다.

 

“성서의 증거와 명백한 이성에 비추어 나의 유죄가 증명되지 않는 이상, 나는 교황과 공의회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고 또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해서 행동하는 것은 안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현명한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 아멘.”

 

보름스에서 교황에게서 온 출교장을 불태우며 “하나님이여, 이 몸을 도우소서”라고 외치던 그의 모습이야말로 역사적 루터에 더 가까운 장면이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때로 ‘저항’ 자체를 보기보다 끊임없이 저항의 내용을 재구성하려 한다. 루터의 논문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를 살펴보면, 그의 주요 문제의식은 당시 교회가 믿음을 오해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루터는 바울 서신을 중심으로, 믿음이란 죄인인 인간이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한 몸이 됨으로써 의와 거룩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터의 믿음 이해는 단순한 신학적 내용이라기보다 하나의 저항 형식으로 읽힐 수 있어야 한다.

 

성서는 저항의 역사이다. 저항의 형식은 언제나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어져 왔다. 자유는 해방을 통해 얻어진다. 아브라함은 당시 우르를 중심으로 한 고대 도시 사회의 질서에서 이탈한, 곧 해방된 자였고, 히브리 민족은 제국의 경영 아래 노예로 살다가 해방된 자들이었다. 자유는 해방을 통해 얻어진다. 해방은 억눌린 것으로부터 빠져나옴으로 이루어진다. 자신이 노예임을, 억눌린 자임을 깨닫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는 순간, 저항의 몸짓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모든 자유는 해방을 전제하고, 해방은 억압을 전제한다. 이러한 저항의 형식으로 루터를 읽을 때, 그는 역사 속에서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저항을 전하는 예언자로 선다.

 

개혁은 나 스스로를 감싸고 있는 저항의 대상을 직시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수는 공생애 이전 세 번의 시험을 통해 자신이 가질 수도 있었던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내려놓았다. 루터는 종교 권력에 맞서 교황에게 저항했다. 개혁의 신학은 저항의 형식을 통해 내용을 생산해야 한다. 기독교와 교회가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남기기 원한다면, 저항의 형식 안에 신학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 신학의 내용은 발전해 왔지만, 루터가 여전히 저항의 예언자로 서 있다는 사실은 개신교의 부끄러운 역사 또한 함께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