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공공성포럼 성명서]

 

피해의 기억은 학살의 면허가 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오만과 인권의 이중잣대를 규탄한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보편적 인권과 국제법의 원칙에 근거하여 이스라엘의 반인륜적 전쟁 범죄를 비판한 것에 대해, 이스라엘 외교부가 ‘유대인 학살 경시’ 운운하며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실로 적반하장이다. 이는 이스라엘 정부가 자신들의 폭격으로 죽어가는 가자지구의 아이들보다, 자신들을 향한 정당한 비판을 더 견디지 못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자인한 꼴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첫째, 비판의 본질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반전쟁, 인권’이다. 주권 국가의 대통령이 민간인 학살과 국제법 위반을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책무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정당한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반유대주의 프레임에 가두려 하지만, 우리의 비판은 유대 민족 전체가 아니라 네타냐후 정부의 전쟁광적 행태와 ‘시오니즘’이라는 광기를 향하고 있다. 앰네스티조차 하마스라 비난했던 이스라엘의 오만은 이제 국제사회의 상식을 넘어섰다. 어떤 역사적 피해를 입었든, 지금 무고한 생명을 파괴하고 있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이 인류의 보편적 양심이다.

둘째, 식민 지배의 고통을 아는 한국은 이스라엘을 비판할 자격이 충분하다.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인간의 존엄을 처참히 짓밟힌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들의 눈물,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절규, 관동대지진의 학살, 그리고 전시체제 아래 감금과 생매장의 참혹함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고통을 타자를 향한 폭력이나 식민 지배의 정당화로 치환한 적이 없다. 고통의 기억을 ‘가해의 면허’로 바꾸지 않은 대한민국은, 피해자의 서사 뒤에 숨어 학살을 자행하는 이스라엘을 비판할 도덕적 권위와 자격이 충분하다.

셋째, 인권 담론의 도구화와 이중잣대를 거부한다. 평소 북한과 중국의 인권에는 목소리를 높이던 이들이, 왜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의 살육 앞에서는 침묵하는가. 인권이 참으로 보편적 가치라면, 그 잣대는 북한에도, 중국에도, 그리고 이스라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인권을 진영 논리로 소비하는 비겁한 태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사과가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민간인 희생에 눈감는 한국 정치의 처절한 자기반성이다.

넷째, 제국주의 공범이 아닌 피해자로서 단호하게 외친다. 대한민국은 중동 분할의 당사자인 영국도, 홀로코스트의 가해국인 독일도, 이스라엘에 무기를 대온 미국도 아니다. 우리는 제국주의의 공범이 아닌 식민주의의 피해자였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 자유롭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어떤 종교도, 어떤 역사적 비극도 민간인 학살을 ‘거룩한 전쟁’으로 둔갑시킬 수 없다. 지금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행태는 피해자의 역사가 아니라 가해자의 광기일 뿐이다.

다섯째, 침묵의 공모를 거부하며 역사 앞의 책임을 다할 것을 선포한다. 우리는 피해의 기억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을 거부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과한 것이 아니라, 인권 국가라면 당연히 내놓았어야 할 최소한의 외침이었다.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가 과거의 아픔을 현재의 범죄를 덮는 방패로 쓰는 일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대한민국 사회가 진영을 넘어 보편적 정의와 인권의 원칙 위에서 모든 국가폭력을 성찰할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생명의 존엄은 그 어떠한 역사적, 정치적 수사로도 훼손될 수 없다. 우리는 이 땅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으로서, 전 세계 어디서든 무고한 생명을 짓밟는 권력에 맞서 끊임없이 비판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2026년 4월 12일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