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2 (2025. 6. 15)
비상계엄 이후 신학자들의 자리
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역사가들은 서양이 중세에서 근대로 이전하는 데 기여한 주된 요인들로 흔히 르네상스, 신대륙의 발견, 그리고 종교개혁을 지적합니다. 이 요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가톨릭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럽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을 해체하고, 합리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 등이 주도하는 근대로 견인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종교개혁을 주도한 이들이 르네상스 인문주의에 영향받은 신학자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농도와 정도는 각기 다르지만, 에라스무스, 루터, 칼뱅, 츠빙글리, 멜란히톤 등이 인문주의의 영향 아래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개혁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들은 고전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성경, 인간, 교육, 도덕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추구했습니다. 동시에, 당대의 매너리즘에 빠진 스콜라신학, 정치권력으로 변질된 교황권과 성직주의, 지성과 영성 대신 미신과 탐욕이 지배하던 교회와 수도원에 대해 죽음과 분열을 각오하고 개혁의 깃발을 올렸지요. 물론, 모든 신학자들이 인문주의와 종교개혁을 지지한 것은 아니며, 인문주의적 종교개혁자들이 종교개혁의 유일한 공로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혼란하고 위태로웠던 시절, 각성한 신학자들이 지성과 양심에 근거해서 교회와 세상을 향해 자신의 소임을 다했기에, 교회를 갱신하고 문화를 변혁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며, 우리가 21세기 한국에서 그 역사를 계속 공부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교회와 사회에서 신학자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은 무엇일까요? 비상계엄의 선포와 해제, 대통령 탄핵 재판과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한 것은 전광훈, 손현보, 전한길, 윤상현 등으로 대변되는 극우 개신교인들이었습니다. 유신과 군부 독재를 연상시키는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가 순식간에 붕괴하는 상황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극심한 추위 속에도 광장과 길바닥에 나와 응원봉을 흔들며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평화적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반면, 극우 개신교인들은 부정선거, 중국개입, 탄핵반대, 이재명 죽이기 등에 올인하며 폭력적으로 법원을 점거했습니다. 이런 현상이 언론을 통해 널리 보도되면서 한국개신교는 핵심적인 극우세력으로 규정ㆍ동일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신학자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빈약했습니다. 대신, 일부 극우적 신학자들의 망언이 언론에 과도히 노출됨으로써, 한국 개신교에 대한 대중적 혐오와 비판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전체적으로 보수화되고, 신학이 교권에 종속된 현실에서 불가피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때보다 각성한 신학자들의 담대한 목소리가 절실히 요청됩니다. 신학자의 수가 부족한 것도, 신학자의 지적ㆍ학문적 역량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학이 현실을 외면한 채 지적 유희에 안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변화된 세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판단이 결여된 채 미신 같은 가짜뉴스와 음모론에 휘둘린다면, 근본주의적ㆍ반지성적 교권주의에 굴종하여 진실과 진리를 끝까지 외면한다면, 이 시대가 직면한 한계와 위기를 치열한 고민과 연구의 대상으로 끌어안고 씨름하지 않는다면, 그래서 성경과 신학, 복음과 상황, 현재와 역사, 이상과 현실, 교회와 세상, 민족과 세계, 신학과 타학문을 동시에 붙들고 몸부림치면서 현실을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신학, 교회, 국가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 시대의 신학은 중세 말 현실을 외면한 채 사변적 관심으로 경도되었던 스콜라 신학의 오류를 반복하면서, 시대의 변화 속에 빠르고 비참하게 소멸할 것입니다. 조선 말기에 시대적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시대착오적 행태를 반복하다 몰락한 위정척사파의 전철을 반복할 뿐입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한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에 함께 한 신앙과 학문의 벗들이 이 시대적 부름과 책임에 진지하고 담대하게 “아멘”으로 화답하길 간절히 기대하고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