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34 (2026.05.26)
작은 전환
김형원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 초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지속적으로 경제성장을 해 왔다. 그러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삶이 별로 나아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 이유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했다. 최근의 결론은 소수의 부유층이 그 과실을 독식하는 방식으로 경제가 구조화된 것이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300년에 걸친 통계자료를 근거로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극심한 양극화가 20세기 말-21세기 초에 재현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이다. 통계 수치로 보면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부동산 임대료의 상승 등 소비자 물가가 임금 소득 이상으로 오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수익이 줄어들고 있으며, 경제성장률 통계에 한 축을 담당하는 자본소득은 소수의 부유층이 독식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가 통계적으로 성장해도 서민들은 그 효과를 체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을 통해서 얻는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지른다는 것은, 겉으로는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착시현상일 뿐이며, 실제로 임금노동자들에게는 실질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이자소득은 상위 1%가 50%를, 10%가 90%를 넘게 가져간다. 이자소득자가 4,60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예금/적금 등은 보편적인 금융자산이지만, 대부분은 적은 액수의 이자만 얻을 뿐이고 거액의 이자는 일부 부유층에게 집중되고 있다. 배당 소득은 상위 1%가 70%를, 상위 10%가 95%를 가져간다. 부동산 임대소득 역시 상위 1%가 55%를, 상위 10%가 98%를 가져간다. 임금노동자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배당/이자/임대소득을 독식하고 있는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고, 소득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진다. 이런 통계 수치들은 경제가 성장해도 그 과실은 소수의 사람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결과가 무엇인가? 사회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것이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가 바뀔 수 있을까? 조만간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주된 이유는 상층부 사람들이 현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도록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고 있고 그것이 꽤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들은 99%의 사람들이 1%를 욕망하게 만든다. 99%에 속하는 사람들이 1%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게 하고, 어떻게든 1% 서클 안에 들어가려고 애쓰게 만든다. 드라마에서 재벌집이 주요 소재가 되는 것, 해외 왕족들이나 억만, 아니 조만장자들의 이야기가 뉴스의 주요 주제가 되는 것, 명품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욕망을 자극하는 것, 등이 비근한 예들이다. 1%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들(대부분이 물질적인 것이지만)을 욕망하게 만들면서 그것을 얻지 못하면 루저가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한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다’ 라는 말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둘째, 99% 중에서 1%에 편입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그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그래서 대중이 1%가 되려는 욕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한다. TV, 신문, 잡지 등에서는 대박 성공 스토리를 멋지게 포장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면서 1%를 욕망하게 만든다. 물론 자기 노력으로 1%에 진입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력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에서도 상대평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으며, A 학점을 받는 사람의 수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현 사회 체제 아래서는 모두가 동일한 노력을 해도 성공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결과 욕망하던 1% 진입의 꿈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린다. 성공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실패한 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99%들은 1%가 아니라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서로 박 터지게 싸운다. 귀족들은 위에서 엷은 미소를 띠고 그 싸움을 구경한다. 자기들끼리 싸움을 하도록 내버려두면 어차피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수는 극소수이기 때문에 1%의 기득권은 잘 유지된다.
셋째, 이렇게 박 터지는 싸움의 체제를 거부하고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그들의 시도를 방해하고, 그래도 안 되면 호되게 징계한다. 99%가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는 것은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시스템을 부정하고 새로운 대안을 추구하는 것은 불순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시도들은 반체제적이고, 반국가적이고, 반사회적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넷째,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평범한 시민들에게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세력들을 동원한다. 어용 지식인이나 종교인들이다. 그들은 1%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받고 1% 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해준다. 특히 지식인의 권위를 맹목적으로 인정하려는 성향이 강한 한국 사람들에게 이런 방식은 잘 먹힌다.
구조적인 변화를 위한 시도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망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면 1%의 구성원만 달라질 뿐 1% vs. 99%의 구조는 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먼저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욕망하는지,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누구를 경쟁 상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거기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1%의 삶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거나 추구해야 할 목표로 삼는 경향이 있는지 살펴보고 그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작은 인식의 전환이 모여 흐름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