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19 (2026.02.03)
사람의 격(格)
백소영(강남대학교 교수/기독교사회윤리학)
기계가 사람 같아지는 시절을 살다 보니, 이젠 사람이 ‘기계’가 되려나 보다. 설정값대로, 자신의 판단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아니, ‘아직’ 기계는 설정값에나 갇히지, 명령 이상의 감정적 행동으로 과격해진 ‘사람-기계’들이 세상을 날로 험악하게 만든다. 26년 첫 달에 접한 비보 중 가장 경악했던 것은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발생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시민 ‘살해’ 사건들이다. 이미 ‘살해’라는 단어를 선택함으로써 이 사건을 바라보는 내 관점은 밝힌 셈이다. 첫 번째 희생자는 1월 7일 자신의 차량을 운전하다가 총상을 입고 사망한 르네 굿(Renee Good)이라는 여성이다. 서른일곱 살의 르네는 자신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그저 과격한 단속국의 행보에 경적을 한번 울렸을 뿐이고, 이에 화가 난 요원이 내리라고 했지만 웃으며, “당신에게 한 건 아니에요.”하며 제 갈 길을 가려 했다. 만약 단속국 요원이 ‘긁힌’ 지점이 더 있었다면 르네와 동승했던 여인의 발언이었을 수는 있겠다. 극도로 흥분하여 적대적인 그들을 보며, 동승자는 그저 조금 누그러뜨리라고, 밥이라도 먹고 일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열린 창문으로 단속반 요원이 르네의 머리와 가슴을 향해 총격을 가한 것이다. 극악범을 저지할 때도 웬만해서는 겨누지 않는 치명적 부위다. 어이없게도 단속국이 속한 국토안보부나 연방정부의 대변인은 이를 ‘정당방위’였다고 발표했다. 그녀는 극좌파에 속하는 활동가였고 단속국 요원들을 공격했다는 첨언과 더불어….
두 번째 참극은 1월 24일에 발생했다. 우연히도 첫 희생자와 동갑인 37세 미국 시민인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이다. 이번엔 남성이다. 단속국의 폭력적 행동에 근심 어린 시선으로 촬영하고 있던 알렉스는, 한 여성이 단속국의 거친 손길에 넘어지자 그녀를 부축하며 아주 조용히 항의했다. 한 손에는 여전히 캠코더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은 위로 든 채 공격 의사가 없음을 밝힌 채로 말이다. 그런데 서너 명의 단속국 요원들이 그를 제압하여 바닥에 꿇리더니 뒷주머니에서 총을 꺼내고 이어 한 요원이 그를 향해 거침없이 총을 발사했다. 무려 열 발이다. 이건 ‘사살’이다. 무장하고 달려드는 테러리스트였다고 해도 제압한 상황에서 발포는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요원의 행동이 아닐 터였다. 이번에도 역시 극좌파 테러리스트 운운하던 공직자들은 시민들의 영상이 여기저기 퍼지고, 무엇보다 알렉스가 중증 재향군인들을 돌보는 간호사였음이 밝혀지면서 난감해졌다.
합법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던 삼십 대 미국 시민 남녀가 이웃을 향해 가해지는 과도한 폭력 앞에서 사람의 ‘격(格)’대로 행동하다가 피살되었다. 사람은 문화적 기호가 다르듯 정치 성향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사람(人)이라면 어김없이 가져야 하는 공동의 틀이 ‘격’이다. 사람이 가진 격이니 인격이라 부른다. 우리가 공공선을 기대한다면, 바로 이 ‘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르네도 알렉스도 자신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자신들과는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일에 작게나마 개입한 이유는, 사람의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눈앞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회적으로, 혹은 조용한 몸짓으로 의사 표현을 했을 뿐이다. “그러지 마세요.”라고.
그 정도의 표현 때문에 시민이 대낮에 공권력에 의해 사살된다면 그런 나라의 정치 시스템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 한 나라가 자국의 번영을 위해 배타적 정책을 고수하고 이를 공적으로 집행하는 것에는 당연히 찬/반이 있을 수 있다. 이걸 공론의 장에서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펼쳐가는 것이 민주사회의 절차라고 배웠고 그런 사회를 지향하며 살아온 그들(미국 시민)이고 우리다. 한 걸음씩 사람의 격을 지키는 사회를 만드느라 그네도 우리도 흘린 피가 많고 가슴 칠 역사가 한 무더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찌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라고 지어진 사람의 ‘격’을 이다지도 허무는 일을 자행하는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신실하게 되돌리겠다는 그들이 정작 하나님의 창조부터 설계된 인간의 ‘격’에서 가장 어긋나게 행동하다니….
아들 없음에 마음 상하고 주눅 들었던 한나가 기껏 아들 하나 얻고 부른 노래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여호와는 먼지 구덩이에서 가진 것 없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십니다. 재 구덩이에서 가난한 사람을 높이 들어 올려 주시지요. 그들이 지체 높은 사람들과 같이 앉게 해 주시고,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해 주십니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고, 여호와께서 그것들 위에 세계를 세우셨으니까요!”(삼상 2:8) 오죽했으면, 얼마나 세상이 먼지 구덩이와 재 구덩이에 ‘인격’을 가진 사람들을 처박았으면, 공직 하나 없는 평범한 한 여인도 그리 희망했을까. 여호와는 사람을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다. 그렇게 만드셨는데, 자꾸 눕히고 꿇리는 이들 때문에 결국은 팔을 펼치실 수밖에 없는 분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팔이다. 팔들이다. 이 선한 사람들의 어이없는 죽음에 침묵한다면 우리는 그저 권력자의 설정값대로 생각 없이 살아가는 ‘기계’이지 결코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