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14 (2025.12.15)

 

여의도 깊은 밤

 

김성한(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동북아시아지부 대표)

 

내란의 밤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여의도에서 군용차량을 막아서던 시민의 모습이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눈에 띈 그 장면은 동영상과 사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긴박한 장면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군용차량을 막아선 사람들 오른쪽으로 반짝이는 보라색 전등으로 장식된 건물이 보인다. 내란의 밤에도 여의도순복음교회 건물은 성탄 장식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다, 2024년 대림절은 12월 1일 시작되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지난 1년 동안 내란의 밤 이후에 드러난 한국교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의도와 대형집회

1970년-80년대에 한국에서 열렸던 연속적인 대형집회는 그 규모와 빈도에 있어서 세계교회 역사에서 특별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먼저 1973년 5월 16일부터 6월 3일까지 지방 주요 도시와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5천만을 그리스도에게“라는 주제로 개최된 빌리 그래함 전도 집회가 있었다. 1974년 8월 13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예수혁명-성령의 제3의 폭발”이라는 주제로 열린 대학생선교회 (CCC) 주최의 엑스플로’74가 있었다. 1977년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32개 교단이 연합하여 전국 300여 곳에서 600여 명의 강사를 동원했던 77민족복음화대성회 역시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마무리되었다. “나는 찾았네! (Here’s Life)”라는 주제로 열린 80세계복음화대회는 1980년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렸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한국교회 100주년 선교대회가 있었다. 1984년 8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라는 주제로 열렸다.

내란을 막고,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급하게 모여든 시민들의 자발적인 집회와 달리, 한국교회의 대형집회는 일 년 혹은 몇 년 전부터 세심하게 계획되고 준비되었다. 수백만 명이 모이는 대형집회는 그 규모에 걸맞은 강사진의 초청과 기획, 홍보, 조명, 음향, 방송과 같이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긴급조치와 계엄령으로 통치하던 권위적인 정부의 적극적 협조 없이는 집회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였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열렸던 다섯 번의 대형집회의 마지막 주 집회 (main event)는 서울 여의도 5.16 광장에서 열렸다.

일제 강점기 비행장이었고 이후 공군기지로 쓰였던 여의도에는 1971년 9월 기존의 활주로를 남겨두어서 유사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된 광장이 새롭게 만들어졌다. 참고로 같은 시기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3년 8월 15일 완공되었고 국회의사당은 1975년 9월 1일 준공되었다. 광장의 원래 의도는 북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 맞먹는 ‘국가 광장 (state plaza)’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광장은 대규모 군중이 관람하는 군사 퍼레이드를 염두하고 계획되었다. 광장의 이름은 1961년 박정희 군사 쿠데타 발생일인 5월 16일을 따 ‘5.16 광장’으로 명명되었다. 집회의 자유가 없었던 1970년대와 80년대, 5.16 광장은 그 이름과 같이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교회가 주최했던 대형집회 외에 그 광장에서 모였던 100만 명이 넘어가는 대형집회들은 반공연맹이 주최하는 ‘6.25 반공 귈기대회’와 같이 반공, 안보 관련 ‘관권 집회’ 혹은 ‘국풍 81’과같이 광주 항쟁 1주기를 가리기 위한 관제 축제였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여의도 5.16 광장에서 열렸던 모든 대형집회는 8월 15일을 전후해서 열렸다는 점이다. 아직 한 여름인 8월,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바닥의 광장은 대형집회를 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광복절인 8월 15일은 한국교회가 해방과 분단에 대해 어떤 답을 찾아야 하는 날이기도 했다. 엑스플로’74를 알리는 전단에는 8월 15일을 ‘분단에 대한 민족의 참회의 날’로 소개한다. 이후 모든 집회에서 8월 15일의 주제는 ‘해방에 대한 감사와 분단에 대한 회개’로 일관되게 제시된다. 물론 이 감사와 회개의 주체는 민족이다. 이렇듯 ‘민족을 복음화한다’라는 민족복음화 담론은 사람들을 설득하여 뜨거운 한 여름, 광장으로 모이게 했다. 그 담론은 광장에 모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주었고 교회의 전도와 선교에 방향을 제시했다. 이 강력한 비전으로 지역과 교파를 초월해서 수백만 명이 여의도에 모였다. 그리고 이 대형집회들은 한국교회의 급속한 성장 원인의 하나로 여겨진다.

 

빛을 비추소서

느닷없이 닥친 비상계엄의 충격과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밝게 빛나는 응원봉을 발견했다. 그 어느 정치세력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이돌 팬클럽의 응원봉이 저항과 연대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난 응원봉을 보면서, 군용차량을 막아섰던 용감한 시민들 뒤로 배경이 되어버린 교회의 성탄 장식을 떠올렸다. 지난겨울, 우리는 거리와 광장에서 비폭력의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회복과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들 너머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선동하는 목사들과 손잡은 교회의 거대한 침묵을 들었다. 단지 침묵의 연대뿐일까? 1973년 여의도 5.16 광장에서 빌리 그래함의 입이었던 또 다른 빌리와, 군용차량 뒤로 보이던 교회의 새로운 담임목사는 ‘채상병 순직 사건 관련 임성근 전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되었다.

여의도 5.16 광장을 가득 채웠던 수백만 명에게, 교회는 어떤 복음의 씨앗을 뿌렸던 것일까? 그 씨앗으로부터 자라난 교회는 어쩌다 그 빛을 잃어버리고 깊은 어둠의 일부가 된 것일까? 예수는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네 온몸이 어두울 것이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심하겠느냐?”(마태 6:23)라고 말씀하셨다. 2025년 다시 새로운 대림절을 보내는 지금도 여전히 어두운 이유는 우리 안의 빛이 어둡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때인지 모르겠다. 아마 우리는 계속해서 무너지고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서 시작될 재구성은 “다시 십자가 복음으로”와 같은 납작한 복음의 반복이 아니다. 연약한 아기로 우리 가운데 오셨던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매년 반복되는 교회의 절기가 우리에게 주는 도전과 위로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은혜 때문이다.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게 하시고,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누가 1:79)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큰 기다림 가운데 가득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