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의식과 위선의 실체한국 극우기독교와 정치의 위험한 결탁

 

김성희(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신약학)

 

2025년, 8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의 첫 미국 방문은 경제와 안보 및 국제사회에서의 신뢰 회복을 위한 중요한 외교적 행보로 평가되었다. 그러나 그 상징적인 회담을 불과 두 시간 반 앞두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Truth Social 계정에 남긴 짧은 글은 한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 숙청 또는 혁명이 일어나는 상황 같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고 그곳에서 사업할 수 없다.”

 

트럼프의 이 발언은 외교적 공식 회담을 앞둔 정치지도자가 내놓기에는 상식 밖의 무례이자 외교 결례였다. 더욱이 그것이 사실 확인이 전혀 되지 않은 정보,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된 정치적 소문에 기반하였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단순한 SNS 논란을 넘어서 국제 외교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당시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사안에 대해 “아직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루머이자, 악의적인 정치 공작일 수 있다”고 신중하게 언급했다. 그러나 곧이어 트럼프의 발언이 실제로 그의 계정에서 직접 게시된 것이 확인되면서, 국민적 분노와 불안이 증폭되었다. 특히 “정부가 교회를 핍박하고 있으며, 미군기지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있다”는 식의 괴담이 극우 채널 및 일부 기독교 매체를 통해 유포되고 있었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사건의 핵심은 국내 극우기독교 세력의 국제 로비 활동이 외교적 외피를 두르고, 실제로 미국 정치인의 판단과 대응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단순한 음모론이나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배후에 경제적 이해관계(맘몬의 거래)와 함께, 극우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종교가 권력과 결탁하여 국가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자국 정부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종교의 공공성 훼손의 한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이 사건은 한국의 극우 정치와 극우기독교 세력이 국제적으로 얼마나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트럼프의 SNS 망언으로 인해 전 세계의 이목이 한국으로 쏠렸던 다음 날,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이영훈 목사는 새벽예배 강단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교회를 존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교회 압수수색 문제를 듣고 불만을 표했지만 해명을 듣고 넘어갔다. 그만큼 우리 교회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존중받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앞으로 이번 정부가 교회는 함부로 손을 대면 안 되는구나하는 것을 반성하게 해야 한다.”

 

마치 누군가가 교회를 ‘건드렸다’는 듯한 이 발언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목사 개인이 교회 전체와 동일시되어야 한다는 것인가? 정당한 수사나 비판조차도 이제는 교회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되는 것인가? 최근 부산의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는 부산시교육감선거와 대선의 운동기간에 교회에서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고 반대 후보를 악마화 하는 등 엄연한 위법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종교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라며 정치적 보복으로 포장하고 있다. 신앙의 이름으로 법 위에 서려는 태도, 목회자 개인을 교회와 함부로 동일화시키는 것, 이것이 과연 정당한가? 같은 맥락에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목사의 특검 출석요구 불응도 심각한 문제다. 그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오랫동안 보수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마치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운 영적 군주라도 되는 양 비춰지고 있다. 이런 태도는 법치주의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특히 종교지도자일수록 더 무거운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들의 행태에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것은 종교적 특권의식과 그에 뒤따른 위선의 실상이다. 스스로 하나님의 특별한 대리자라고 여기며, 자신의 말과 행동이 곧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의식은 예수 시대 바리새인들이 가졌던 위선과 다르지 않다. 겉으로는 경건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았던 그들은 예수에게 가장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마23:1-36).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롬2:17-2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에 도취된 그들은 결국 복음에서 멀어졌다. 신앙은 특권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는 성찰과 회개의 자리에서 진정성을 갖는 것이다. 과거에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경험이 현재의 타락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오늘날 일부 목회자들이 자신을 교회 자체와 동일시하고, 개인의 정치적 견해나 불법 행위마저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는 모습은 매우 위험하다. 나아가 이러한 목회자들이 성도들까지 정치적 집단행동에 동원하는 것은, 신앙 공동체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또 하나의 폭력이다. 이제 교회와 그 지도자들은 선택해야 한다. 권력을 좇아가는 자신의 특권의식과 위선에 스스로 속아 넘어가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망칠 것인가, 아니면 예수님처럼 스스로를 비우고 법 앞에서 책임지는 겸손한 종이 될 것인가. 법과 질서를 어겼다면 누구든지 마땅히 조사받고 그에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신앙인의 길이자 성숙한 사회일원으로의 도리이다. 또한 현재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한국기독교의 자정 능력을 기르기 위한 시작이며, 미래의 한국기독교를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할 좌표이다. 십자가는 권력의 상징이 아니다. 고난과 자기부인의 길이다.

 

얼마 전인 2025년 9월 10일, 미국 극우 청년 정치의 대표적 인물이자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찰리 커크가 유타밸리대학 행사 도중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불과 며칠 전, 9월 5~6일 킨텍스에서 열린 ‘빌드업 코리아 2025’에 주요 논객으로 참여해, 한국의 이재명 정부가 교회를 압수수색하고 있으며,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며 극우기독교 진영의 위험한 담론을 조장한 바 있다. 젊은 정치인의 비극적인 죽음은 매우 안타깝지만, 동시에 이 사건은 증오와 혐오를 기반으로 한 정치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철저히 되돌아보게 만든다. 암살의 배경과 이유는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지만, 일부 한국 극우기독교 진영에서 이를 손현보 목사의 구속과 연결지어 해석하며 여론을 형성하려는 시도에는 깊은 우려를 표한다. 우리는 이 비극을 오히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혐오와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정치적·종교적 수사가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과 교회지도자들이 따라야 할 길은 명확하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하고 정직하게 서는 것, 자신의 신앙과 신념을 절대화시키지 않는 것, 자신의 문제를 교회의 문제로 환원시키거나 집단적으로 선동하지 않는 것,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지 않는 것, 그리고 세상의 법과 공정 앞에 떳떳하게 응답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이고 교회를 참되게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