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49 (2026.09.08)
한국교회는 일제 말기의 신사참배를 진정으로 참회해야 한다
정종훈 목사(연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대표, 평통연대 상임대표)
한국교회 신사참배의 과오와 부분적 참회의 한계
한국개신교 장로교는 올해로 신사참배 결의 88주년을 맞이했다. 1938년 9월 10일,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는 일제의 강압에 무릎을 꿇고, “신사는 종교가 아니오, 기독교 교리에 위반되지 않는다.”라고 결의한 후, 부총회장을 비롯한 총대 23명이 즉시 평양 신사에 가서 참배했다. 이는 한국 장로교회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의 하나였는데, 사실상 더 큰 문제는 신사참배가 단순한 굴복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장로교 이전에 천주교는 1936년 5월 교황청의 훈령에 따라서 신사참배를 인정했고, 감리교는 1936년 6월 양주삼 총리사가 감리회보에 일제의 논리인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국민의례”라는 공문을 게재함으로써 아무 문제 없이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사참배 반대의 보루였던 장로교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한국교회는 급속도로 무너져 일본 천조대신의 이름으로 신도세례(神道洗禮)를 거행했고, 동방요배(東方遙拜)를 예배에 도입했으며, 전쟁을 선전 선동하는 나팔수로 나서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물자와 전투기를 자발적으로 헌납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배교(背敎)의 길을 걷다가 1945년 8월 1일 결국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합되고 말았다.
당시 각 교파의 교단 총회는 자신들의 굴복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논리를 펼쳤다. 일제의 주장처럼 신사참배를 애국적 국가의식이라 규정함으로써 일제의 기만적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교회와 학교를 보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신앙의 정절을 포기한 변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신사참배를 ‘조상숭배의 미덕’으로 포장하거나, “황국신민의 의무와 종교 신앙은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일제의 강요를 자발적으로 추종하기까지 했다.
2006년 기독교대한복음교회는 한국교회 최초로 복음교단 초대 감독 최태용 목사의 친일 행적에 대한 죄책고백문을 발표했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2007년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 죄책고백을 선언문으로 발표했다. 2007년 9월 제92회 기장 총회는 “신사참배와 부일협력에 대한 죄책고백 선언문”을 채택하고 2008년 3·1절 기념주일을 ‘신사참배 회개주일’로 제정했다. 2009년에는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장, 합신 등 4개 장로교단이 교단 분열 60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 연합예배를 드리며 신사참배 참회의 기도를 함께했다. 2013년 제33회 감리교 서울연회에서는 ‘신사참배 회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들은 기도문에서 “일제 강점기에 무릎을 꿇고 제일 먼저 신사참배를 받아들였다”라고 인정하며, “일제의 군국주의 이념을 선전하는 나팔수가 되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개 운동은 대부분 교단 지도부의 선언이나 연회 또는 총회 차원의 결의에 머물렀다. 2008년 신사참배 7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전체의 회개를 이끌려 했던 주도자들은 “전국적 모임으로 공개적이고 가시적인 회개”를 원했지만, 각 교단 총회장 가운데 누구도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평신도 대표들만 화해의 의식을 대신하는 데 그쳤다. 각 교단이나 특정 교회에서 신사참배를 회개하고 순교자들의 업적을 기리는 부분적 행사들이 있었지만, 그 행사들은 상징적 행사에 머물러서 일반 교인들의 인식과 참여로 확대되지는 못했다.
청산되지 않은 신사참배가 초래했던 한국교회의 현실
해방 직후 신사참배에 굴종한 대다수 지도자는 신앙적 범죄에 대한 철저한 고백과 참회 없이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는 대세 순응론으로 자기합리화에 급급했다. 그들은 진실한 회개보다 면피성 행위에 머물러서 신사참배와 부일협력의 죄를 청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해방 후에도 지도층으로서 교회 내 영향력을 여전히 유지했다. 그들은 이승만 정권과 부정선거를 지지하고 편승한 데서 더 나아가 5.16 군사 쿠데타 정권과도 적극적으로 야합하는 길을 선택했다.
1960~1970년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체제를 공개적으로 비호했고, 1968년 시작한 ‘대통령조찬기도회’(현재의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축복하는 도구가 되었다. 더욱이 1980년 8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폭력적으로 진압된 직후, 주요 교단의 총회장급 지도자 20여 명은 쿠데타로 정치권력을 쟁취한 전두환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했다. 이는 불의한 권력자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는 군대 귀신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미화한 것이었다.
또한 해방 정국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극단적인 친미·반공 이념에 사로잡혔다. 이는 신사참배 강요 당시 국가권력에 굴복했던 것처럼, ‘반공’이라는 새로운 절대적 이념 아래 굴복을 반복한 것과 다름없었다. 모든 현상을 ‘선(미국과 기독교)’과 ‘악(북한과 공산주의)’으로 보는 이분법적 구분이 교회 내에 자리 잡게 되었고, 이는 북한 동포를 적대시하며 평화통일의 모든 노력을 저지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신앙적·정치적 이상향으로 삼는 친미주의 성향의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의 보수화를 강화했고, 보수정권의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우(愚)를 범하도록 했다.
돌아보면, 보수정권이냐 진보정권이냐에 상관없이 실행되어 온 국가조찬기도회는 한국교회가 정치권력에 아첨하고 예언자적 책임을 유기하도록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정치권력에 접근해서 불의를 축복하는 관행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어지는 행태이며, 이는 신사참배 당시의 굴욕적 결의를 따른 신앙의 왜곡과 변질, 타락의 구조적 행태라고 말할 수 있다.
신사참배에 대한 죄책고백의 진정한 의미
신사참배에 대한 죄책고백은 과거의 잘못을 규탄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의 삶을 성찰하는 거울이 되어야 한다. 역사학자들은 과거사 청산을 “과거를 위한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역사 읽기”라고 말한다. 신사참배의 역사는 1930~40년대의 사건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사는 우리가 어떤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는지 질문하는 계기로 되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우상은 돈과 권력이다. 교회와 목회자들의 끊임없는 재정 비리와 교회 세습은 한국교회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이며, 교권주의와 정치권력의 결탁은 권력의 우상을 섬기는 것과 별로 다르지가 않다.
1945년 10월 독일 개신교회가 발표한 ‘슈투트가르트 죄책고백’은 한국교회에 귀중한 교훈을 준다. 독일교회는 나치 정권 아래에서 “더 용감하게 신앙고백을 하지 못했고, 더 진실하게 기도하지 못했고, 더 즐겁게 신앙 속에 살지 못했고,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음”을 고백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사죄를 넘어 독일교회 재건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치 정권하의 책임 있는 지도자들은 교회 재건의 과정에서 자진해서 물러났고, 이후 독일교회는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해방 후에도 친일 지도자들이 교권을 유지했고, 회개를 촉구하던 출옥 성도들은 오히려 배척당했다. 패전 직후 참회의 고백을 했던 독일교회가 분열 없이 통합을 유지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상황이었다.
이제 한국교회는 죄책고백을 통해 잘못된 교회 전통과 단호히 절연한다는 의지를 천명해야 하고, 잘못된 교회 현실을 실제로 개혁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향린교회가 2003년 기장교단 희년 총회에서 제안한 죄책고백안은 그 범위를 신사참배를 넘어 분단의 문제, 베트남전쟁과 광주항쟁의 묵인, 친미 사대주의 등으로 확장한 바 있다. 김승태 목사 역시 일제에 앞장선 목회자들을 회개하도록 촉구하지 않은 죄, 가해자 일본에 보상과 배상을 요구하지 않은 죄, 베트남전쟁과 광주항쟁의 참상을 묵인한 죄, 통일 인사를 매도하고 대북 식량의 지원을 반대한 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고 지지한 죄 등 더 많은 고백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사에 대한 죄책고백은 과거의 어떤 인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삶을 위한 것이다. 죄책고백으로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것은 결국 오늘 우리 삶의 방식과 교회의 존재 방식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일반 역사계의 진실규명 작업이 현재의 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을 고양하기 위함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과거의 죄책을 드러내고 고백하며 회개하는 일은 새로운 시대를 향해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오늘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이 후손들에게 청산해야 할 죄책이 되지 않도록 살겠다는 결단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죄책고백은 단절해야 할 역사와 계승해야 할 역사를 분별하는 일이고, 뒤바뀐 역사의 격랑 속에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절실히 필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교회와 기독교인들의 각오
한국교회는 객관적 역사 교육을 실행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라는 수치스러운 과거를 체계적으로 교육한 바가 없다. 교회사 교육에서 이 사건은 간략히 언급되거나 순교자들만 미화되며, 대다수 교인은 1938년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 이후 교회가 어떻게 배교의 길을 걸었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객관적 역사 교육을 위해서 신사참배 문제를 필수적인 주제로 편성하고, 신학교와 교회학교의 교육과정에 포함해야 한다. 주기철, 한상동, 손양원 등 순교자들의 신앙뿐만 아니라, 홍택기, 김길창, 양주삼 등 친일 지도자들의 행적도 왜곡 없이 가르쳐야 한다. 일제의 강압 속에서 교회와 학교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폐교와 철수를 감수했던 선교사들의 결단도 함께 조명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각 교단의 신사참배 참회의 결의는 완결이 아닌 출발이 되어야 한다. 2007~2009년에 걸쳐 몇몇 교단이 죄책고백 선언문을 채택했지만, 이는 교단 지도부의 결정에만 그치고 일반 교인들에게까지 전파되지는 않았다. 이제 각 교단에 속한 모든 교회가 신사참배 회개주일을 지정하고, 자체적으로 참회하는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려야 한다. 이는 교단 차원의 선언을 실제 신앙생활로 연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평신도들도 교육과 참여를 통해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과거사를 자신의 문제로 직시하도록 해야 한다. 신사참배에 대한 참회는 목회자와 총회 대의원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전체 교인의 몫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개별 교단을 넘어서 한국교회 전체가 연합해 참회하는 것도 필요하며, 젊은 세대와 다음 세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승할 수 있도록 교육 자료와 프로그램도 개발해야 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정치에 대한 예언자적 책임을 회복해야 한다. 신사참배는 종교적 문제이기 이전에 정치적 문제였다. 일제는 신사참배를 황국신민화 정책의 핵심 도구로 삼았고, 이를 수용한 교회는 정치권력에 굴복한 것이었다. 이러한 패턴은 해방 이후에도 반복되었다. 한국교회가 정치권력에 아첨하지 않고, 불의와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회복해야 한다.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한 정권 축복의 관행을 중단하고, 불의한 권력자를 향해서 비판적 메시지를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교회가 특정 정당이나 이념에 종속되지 않고, 모든 정치권력을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는 독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권력자보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편에 서야 하며, 교인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에 기반한 정치적 양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는 신사참배 당시 일제에 굴복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새로운 출발을 향하여
한국교회는 신사참배 결의 88주년을 맞아 역사적으로 범한 중대한 과오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돈과 권력의 우상을 척결하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교회에 주어진 사명에 충실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한국교회 200년의 새 역사를 준비해야 한다. 신사참배에 대한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진정한 참회는 과거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역동적 에너지이다. 이는 21세기의 새로운 각성과 정체성 회복을 위한 한국교회의 필수적 조건이며, 하나님과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교회로 거듭나는 유일한 길이다.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직시하고 진정으로 참회할 때, 한국교회는 비로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예언자적 용기로 불의한 권력에 맞서고, 사회적 약자들과 사랑으로 연대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