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52 (2026.10.06)
적대와 경계를 넘어, 환대와 상호 배움의 공간으로:
여명학교 갈등이 우리에게 묻는 것
김상덕 교수(한신대학교)
공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구조물이 아니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관계와 기억, 그리고 한 사회가 품고 있는 철학이 얽혀드는 삶의 토대다. 최근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북한 이탈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의 이전 건립 문제는 우리 사회가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고 환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여명학교는 지난 22년간 자체 건물을 갖지 못한 채 여러 곳을 전전해 왔다. 과거 은평구 뉴타운 지역으로의 이전이 추진되었을 때도, 그리고 최근 또 다른 폐교 부지로의 이전이 논의되는 과정에서도 이들의 정착은 순탄치 않았다. 찬반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학교와 관계 기관은 아픈 기억을 품고 건너온 탈북 청소년들에게 안정적인 배움의 기회와 온전한 보금자리가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반면, 건립을 반대하는 일부 지역 주민들은 사전 소통 없는 일방적인 행정 처리, 지역 사회가 누려야 할 편의 시설의 박탈, 그리고 거주 환경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이 복잡한 사안을 단순한 ‘지역 이기주의(NIMBY)’나 ‘집단 간의 갈등’으로 축소해 버리는 얄팍한 시선이다. 특히 언론 미디어는 이 사안을 두고 양극단의 목소리만을 과대 대표하여 갈등 구도를 심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는 갈등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탈북 청소년을 동정의 대상이나 낯선 타자로만 규정하는 ‘타자화’만큼이나, 지역의 일상과 삶의 질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우려를 쉽게 ‘악마화’하는 접근 역시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 건립이 논의되는 지역 주민 전체가 반대하는 것이 아님에도, 일부의 불안과 이견을 집단 이기주의로 몰아세우는 순간 대화의 문은 닫히고 만다. 이보다는 주민들의 불안을 상쇄할 구체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단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탈북민을 위한 교육 공간의 필요와 상호 배움의 장소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 갈등을 어떻게 공존의 지혜로 전환할 수 있을까? 미국 조지아주의 소도시 ‘클락스턴(Clarkston)’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영감을 준다. 1980년대 이후 중산층이 빠져나가며 상권이 무너지고 쇠락해가던 클락스턴은, 난민 재정착 기관들이 지역의 저렴한 빈 아파트들을 활용해 다양한 국적의 난민들을 이주시키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난민들을 낯선 위협으로 배척하는 대신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이주민들은 지역 경제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소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고, 비어 있던 거리에는 다양한 문화권의 식당과 상점들이 들어서며 상권이 극적으로 부활했다. 시혜적 수용이 아니라, 서로의 결핍을 채우며 ‘미국에서 가장 다양한 1평방마일(square mile)’이라는 별칭과 함께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여명학교 역시 이와 같은 ‘공존과 상호 배움의 공간’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역 주민과 동떨어진 외로운 섬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탈북 청소년과 지역의 청소년들이 만나고 소통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상호 배움의 플랫폼의 역할을 수행하길 기대한다. 탈북민이라는 낯선 이와의 만남이 일상의 경험이 되고, 점차 그 문턱이 낮아질 때, 우리 안의 막연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서로의 존재를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환대는 가능해질 것이다. 평화는 그렇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로슬라브 볼프(Miroslav Volf)는 진정한 포용이란 스스로의 내면에 타자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치유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배제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 사안을 단순히 행정이나 부동산의 논리로만 바라볼 수 없다. 타자를 환대하는 것은 분단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본질적인 신앙의 실천이자 평화의 연습이다.
김현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환대란 사람에게 인간다운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실천될 수 있으며, 이로써 그(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임을 알게 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탈북민에게도 미래를 꿈꾸고 공부할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이는 그들의 인간다움을 위한 최소한의 장소이자, 우리 사회가 그들을 품에 안아주고 있다는 상징이다. 여명학교는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가, 그리고 분단된 한반도가 낯선 타자를 어떻게 따뜻하게 껴안는지를 보여주는 환대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선을 긋는 손쉬운 길 대신, 주민들의 우려를 보듬고 학생들의 상처를 닦아주며 더 넓은 공존을 상상하는 치열한 지혜가 필요하다. 이 작은 학교가 훗날 우리 사회가 맞이할 통합과 평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섣부른 판단보다는 더 깊고 다정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모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