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55 (2026.10.27)
성서고고학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삽은 성서를 증명하지 않는다
권지성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성서고고학은 처음부터 중립적인 과거 연구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 출발점에는 성서를 역사로 확인하려는 신앙적 기대가 있었다. 그 기대를 실현할 수단으로 유럽의 탐사와 측량, 발굴이 동원되었다. 물론 발굴은 지식을 증폭시켰다. 그러나 무엇을 찾을 것인지, 어느 시대를 중요하게 여길 것인지, 발견을 누구의 역사로 부를 것인지는 유물이 결정하지 않았다. 성서고고학의 역사는 과학적 방법의 발전과 성서 지상주의 질문이 함께 결합된 역사다.
우습게도19세기 유럽과 미국의 여행자들은 팔레스타인에서 무려 수천 년전의 성서 속 지명을 찾았다. 1838년 에드워드 로빈슨 (Edward Robinson)과 엘리 스미스 (Eli Smith)는 현지 아랍어 지명을 단서로 고대 장소들을 식별했다. 이 방식은 성서지리 연구에 큰 성과를 남겼다. 그래서, 현재 그 땅에 살아가는 마을과 주민은 그 자체의 역사를 분명히 가지고 있음에도 지워지고, 그들은 단지 고대 성서세계의 흔적을 보존한 존재로 읽히기 일수였다. 살아 있는 팔레스타인들은 그 땅을 설명하는 주체가 아니라, 성서 속 지리를 복원하는 특정 민족 기원을 설명하는 “자료”가 되었다. 1865년 런던에서 창설된 팔레스타인탐사기금 (Palestine Exploration Fund, PEF)은 이 관심을 제도화하기에 이르렀다. 1871년부터 진행된 서팔레스타인 측량사업은 지형, 도로, 유적, 지명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성지에 관한 지식을 정밀하게 만든 작업이었지만 영국 육군 공병대의 참여에서 보듯이 군사적 행정적 지원의 효용이 발휘된 작업이었다. 나디아 아부 엘하즈가 지적하듯 땅의 측량은 단순히 이미 있는 땅을 그리는 행위가 아니었다.[1] 사실 지도를 그리는 방식 자체가 팔레스타인을 “성서의 땅”이자 조사와 관리 가능한 누군가의 영토로 새롭게 보이게 했다. 이것을 곧바로 후대 시온주의의 계획의 일부라고 부를 수는 없다. 다만 대제국의 지리적 지식이 훗날 다른 정치적 기획에 이용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1890년 플린더스 피트리 (Flinders Petrie)의 텔 엘헤시 (Tell el-Hesi) 발굴은 단순한 유적 탐사를 넘어, 유물과 지층을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고대 역사를 재구성하는 근대 고고학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층위를 구분하고 토기의 형태 변화를 비교하면, 성서가 말하지 않는 시대도 물질자료로 연구할 수 있었다는 점은 획기적이었다. 이 성과를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기술의 발전이 연구 질문을 자동으로 바꾸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발굴 방법은 점점 과학적이 되었지만, 발굴해야 할 장소와 기대하는 “결론”은 여전히 구약성서 이야기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 미국 성서고고학을 대표하는 인물은 윌리엄 올브라이트 (William F. Albright)였다. 그는 1920년대 예루살렘의 미국 동방연구기관을 이끌었으며, 텔 베이트 미르심 (Tell Beit Mirsim) 등의 유적을 발굴하면서 토기 형태와 출토 지층을 분석해 유물의 연대를 추정했다. 또한 이러한 발굴 성과를 고대근동의 언어와 문헌 연구에 연결하여 유적 연대를 확정하고 성서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고자 했다. 그의 공헌은 실질적이었다. 올브라이트를 신앙 때문에 사실을 외면한 사람으로만 비판하면 그의 방법론적 성취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올브라이트의 연구에는 또 하나의 야망이 있었다. 그는 고고학이 역사비평으로 약화된 성서의 역사적 신뢰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그런 기대는 좋은 것이다). 족장전승의 관습과 이동, 가나안 도시의 파괴, 이스라엘의 정착,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을 물질자료와 연결하려 했다. 당시에는 이 대응관계가 마침내 성서의 오래된 텍스트를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당대에 비슷한 관습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관습을 말하는 특정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가 아니다. 배경의 개연성과 사건의 사실성은 구별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차이를 좁혀 버리거나 아예 무시해 버린 것이 올브라이트식 성서고고학의 근본적 약점이다. 여기서 비판의 표적은 한 사람의 열정적인 종교가 아니라 자기가 발견한 증거의 사용법이다. 토기와 건축층은 그 자체로 족장 아브라함이나 여호수아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연구자가 먼저 성서의 사건을 역사적 틀로 놓고 거기에 유적을 끼워 맞추기 시작하면, 발굴 결과는 독립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이 아니라 이미 설정되고 상상한 이야기의 삽화가 될 뿐이다.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올브라이트를 현대 정치적 시온주의와 곧바로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의 학문적, 신학적 열정과 이후 이스라엘 국가 서사에서 성서고고학을 활용한 과정은 구별하여 추적해야 한다.[2]
“삽” (고고학)은 성서를 입증해 주기에, 고고학적 발견이 일반인에게 주는 위력은 실로 엄청나다. 성서 본문에서 장소와 사건을 찾고, 땅을 파서 그 역사성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 틀에서는 성서가 질문을 만들고, 고고학이 “답”을 제출한다. 문제는 그 답이 예상과 다를 때 드러난다. 발견이 본문과 맞으면 ‘입증’이라 말하고, 맞지 않으면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연대가 잘못되었다고 처리한다면, 검증은 사실상 성서 속 내용의 반증이 결코 될 수 없는 무지성 “믿음”이 된다. 이 문제는 여리고와 아이의 정복 이야기, 족장들의 역사적 연대, 거대한 통일왕국을 둘러싼 논쟁에서 분명해졌다. 텔의 파괴층은 여러 전쟁과 재해 중 어느 사건을 가리키는지 별도의 증거 없이 결코 말해 주지 않는다. 궁전이나 성문 역시 성서에 등장하는 왕의 이름만으로 그 연대가 확정되지 않으며 왕의 이름이 나왔다고 성서 속 이야기의 객관성을 확보하지 않는다. 반대로 비문, 토기, 탄소연대, 정착 양상 등이 본문 일부와 부합할 때에는 그 일치의 범위만큼만 반드시 말해야 한다. 고고학은 성서의 모든 이야기가 허구라고 단정할 권한도, 그 모든 이야기를 사실이라고 보증할 권한도 없다. 그 이유는 고고학은 누군가의 해석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키스 휘틀럼 (Keith Whitelam)의 비판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고대 이스라엘만을 찾는 연구에서 팔레스타인의 수천 년 역사는 “이스라엘이 등장하기 전”과 “이스라엘이 사라진 뒤”의 배경이 되기 쉽다.[3] 그는 이를 팔레스타인 역사의 “침묵화”라고 불렀다. 누르 마살하 (Nur Masalha)와 슐로모 산드 (Shlomo Sand)도 성서적 과거가 근대의 민족적 기억과 결합하는 방식을 추적한다. 이 주장들은 각각 강도와 대상이 다르기에 모두 한 덩어리로 취급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공통으로 남기는 질문은 날카롭다. 우리는 땅에 남은 모든 사람의 역사를 발굴했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찾으려 했던 “이스라엘”만 보았는가?
“성서고고학”이후를 생각해 보자. 1970년대 이후 변화는 단순히 성서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커졌다는 데 있지 않다. 광역 지표조사, 주거지와 농촌경제 연구, 환경자료, 정교한 토기 편년과 절대연대 측정이 늘어나면서 질문 자체가 바뀐다.[4] “여호수아가 이 도시를 무너뜨렸는가?”보다 “이 도시가 언제, 어떤 이유로 쇠퇴했는가?”가 중요해졌다. 윌리엄 데버 (William G. Dever)는 고고학을 성서의 시녀로 두지 않고 남부 레반트 사회의 독립적인 연구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그는 성서가 보존한 일부 역사적 기억까지 일괄적으로 폐기하는 극단적 회의론에도 반대했다. 토마스 톰프슨 (Thomas L. Thompson)은 족장전승의 역사성을 고고학적 유사성만으로 보증하려는 시도를 비판했다. 필립 데이비스 (Philip R. Davies)는 “성서에 서술된 이스라엘”과 자료를 통해 재구성되는 “역사적 이스라엘”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휘틀럼은 이 논의를 팔레스타인 전체의 역사서술 문제로 확장했다. 이스라엘 핀켈스타인 (Israel Finkelstein)과 닐 애셔 실버먼 (Neil Asher Silberman)은 특히 정착 과정과 왕국 형성에 대한 고고학적 재구성을 통해 성서서사를 그대로 역사로 전제할 수 없음을 대중적으로도 보여주었다. 이 학자들이 모든 쟁점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성서가 제공하는 이야기와 땅에서 확인되는 자료를 “별도”의 증거로 평가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고고학이 과학적 방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무엇을 발굴하고, 어떤 유물을 중요하게 다루며, 그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전시할지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국가적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고고학 역시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뜻이다.[5] 아부 엘하즈는 이스라엘에서 고고학적 발굴과 유물의 분류 및 전시가 유대인의 역사적 땅이라는 인식을 강화하고 영토적 권리를 정당화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분석한다. 마살하는 성서에 나타난 땅에 관한 이야기가 현대 이스라엘의 지명과 기념 활동, 국가적 역사 인식에 반영되면서 정치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비판한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고고학자가 동일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연구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고학적 발굴이 실제로 밝혀낸 사실과 그 결과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을 구별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서고고학의 발흥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는 두 가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이 학문은 팔레스타인의 고대사를 연구할 강력한 방법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 방법을 움직인 초기 질문은 우리가 가진 구약성서를 중심에 놓았고, 그 결과 다른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과거를 주변으로 밀어낼 수 있었다. 이제 남는 문제는 “발굴이 성서를 증명했는가?”가 아니다. “누가 질문을 정했으며, 어떤 과거가 과학의 이름으로 중요해졌는가?”하는 점이다.
정리해 보자. 19세기 서구의 성서고고학은 팔레스타인에서 성서의 역사성을 입증하려는 신앙적 열망에서 출발하여 중요한 학문적 성과를 거두었지만, 성서를 발굴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정작 그 땅에 살아온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역사를 주변으로 밀어냈다. 오늘날에도 이 오래된 습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토기 조각 하나, 무너진 성벽 하나, 이름이 새겨진 비문 하나를 발견하면 성서의 이야기가 입증되었다는 환호가 뒤따른다. 그러나 토기는 사용된 시대를 알려줄 수 있어도 누가 성서 속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말하지 못한다. 파괴층은 도시가 무너졌음을 보여주지만 그 도시를 여호수아가 무너뜨렸다고 증언하지 않는다. 고고학에는 연대 측정과 물질 분석 같은 과학적 방법이 있다. 하지만 유물에서 특정 사건과 인물을 끌어내는 일은 언제나 “해석”이며, 그 해석은 독립적인 증거로 검증되어야 한다.
출애굽이나 족장 이야기, 다윗과 솔로몬의 왕국도 마찬가지다. 이집트에 서아시아계 사람들이 살았다는 사실이 모세의 출애굽을 입증하지는 않는다. 고대에 왕궁이 있었다고 해서 솔로몬의 궁전으로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성서 이야기 절반에 발굴 자료 절반을 섞는다고, 최대주의자들과 최소주의자들을 반반 섞는다고, 역사적 사실이 만들어지는가? 두 개의 추정은 서로를 증명하지 못한다. 성서의 사건을 먼저 사실로 정해 놓고 거기에 유물을 맞추는 것은 검증이 아니라 순환논증이다. 이런 태도는 창조과학의 무리한 변론을 떠올리게 한다. 창세기 1장이 참된 말씀이라면 반드시 현대 과학 교과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설명하기 어려운 공룡 뼈가 나오면, 극단적인 주장에서는 하나님이 그것을 지층에 넣어 두었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믿음을 지키겠다며 과학을 끌어왔지만 결국 과학도 성서도 오해한 셈이다. 발굴 자료를 성서의 모든 이야기와 억지로 연결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우스운 애기지만 이런 식의 연결에 발굴 사진 몇 장, 비문과 토기 사진 몇 장에 그 의미를 해석할 힘이 없는 대중들은 혹하고 환호한다. 우스운 애기다.
성서가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인가? 나는 기꺼이 “아멘”이라고 답한다. 고고학이 고대 사회와 성서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가? 물론 “그렇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서의 모든 장면을 고고학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발굴을 학문이 아니라 확신을 파는 유튜브 채널 “장사”로 바꾸는 순간, 연구자의 열정과 땀은 선전의 재료가 된다. 특히 고대의 유물로 오늘의 점령과 폭력에 면죄부를 주려는 정치적 시온주의와 전쟁의 논리에 고고학이 동원되는 것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 삽은 땅을 파는 도구이지, 누군가의 땅과 생명을 빼앗을 권리를 발급하는 도장이 아니다.
——————
[1] Abu El-Haj, Facts on the Ground, 22–25; Whitelam, Invention of Ancient Israel, 46–48; Finkelstein and Silberman, Bible Unearthed, 15–16.
[2] Masalha, Bible and Zionism, 102–105; Dever, “What Remains,” 25–35; Albright, Archaeology of Palestine and the Bible, 24–25.
[3] Whitelam, Invention of Ancient Israel, 46–48, 71–73; Masalha, Bible and Zionism, 102–105; Sand, Invention of the Jewish People, 107–124; Masalha, Zionist Bible, ch. 3.
[4] Davies, In Search of “Ancient Israel,” vii–xi; Thompson, Mythic Past, 34–61; Finkelstein and Silberman, Bible Unearthed, 18–23; Dever, What Did the Biblical Writers Know?
[5] Abu El-Haj, Facts on the Ground, 13–15, 22–25; Masalha, Zionist Bible, ch. 3; Masalha, Bible and Zionism, 102–105.
참고문헌
Abu El-Haj, Nadia. Facts on the Ground: Archaeological Practice and Territorial Self-Fashioning in Israeli Society.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1.
Albright, William F. The Archaeology of Palestine and the Bible. New York: Fleming H. Revell, 1932.
Davies, Philip R. In Search of ‘Ancient Israel’: A Study in Biblical Origins. 2nd ed. London: Bloomsbury T&T Clark, 2015 [1992].
Dever, William G. “What Remains of the House That Albright Built?” The Biblical Archaeologist 56.1 (1993): 25–35.
Dever, William G. What Did the Biblical Writers Know and When Did They Know It? Grand Rapids: Eerdmans, 2001.
Finkelstein, Israel, and Neil Asher Silberman. The Bible Unearthed: Archaeology’s New Vision of Ancient Israel and the Origin of Its Sacred Texts. New York: Touchstone, 2002 [2001].
Masalha, Nur. The Bible and Zionism: Invented Traditions, Archaeology and Post-Colonialism in Palestine–Israel. London: Zed Books, 2007.
Masalha, Nur. The Zionist Bible: Biblical Precedent, Colonialism and the Erasure of Memory. Durham: Acumen, 2013.
Palestine Exploration Fund. “History.” https://www.pef.org.uk/about/history/ (접속 2026.10.24).
Robinson, Edward, and Eli Smith. Biblical Researches in Palestine, Mount Sinai and Arabia Petraea. Boston: Crocker & Brewster, 1841.
Sand, Shlomo. The Invention of the Jewish People. Translated by Yael Lotan. London: Verso, 2009.
Thompson, Thomas L. The Mythic Past: Biblical Archaeology and the Myth of Israel. New York: Basic Books, 1999 (영국판 제목: The Bible in History).
Whitelam, Keith W.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The Silencing of Palestinian History. London: Routledge, 1996.
Wright, G. Ernest. Biblical Archaeology. Philadelphia: Westminster,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