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18 (2026.01.27)
지옥의 묵시록
박창훈(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우리는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우리는 지옥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지옥이다”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무소부재하심이라는 속성을 생각한다면, 분명 하나님은 지옥에도 계신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시편 139편 8절에서,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하나님은 지옥으로 생각되는 곳에도 계신다는 것을 시인의 마음으로 표현하고 있다. 만약 하나님이 지옥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하나님의 통치권 밖에 있는 독립된 공간이 되어버리는데, 이는 무소부재한 절대자라는 하나님에 대한 정의와 충돌하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하나님은 지옥의 심판을 집행하고, 유지하는 주권자로서 그곳에도 계신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약에 하나님이 지옥에도 계신다면, 그것은 더 이상의 특정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이야기가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 상태는 지옥과 같은 곳이 된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분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 그곳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하나님은 항상 계시는데, 세상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자기중심의 세계로, 자기의식만의 현장으로 알고 산다면 거기가 지옥의 입구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지옥과도 같은 상황을 경험하는 이들이 실제로 있으며, 이러한 의식은 절망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자책과 회한과 포기로 이어진다. 가난, 질병, 전쟁, 사고 등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과 직접 마주한다.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아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늘상 말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되어 도적처럼 맞닥뜨리면, “내가 그리 믿음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깨닫는다. 이러한 아픔으로, 일상을 지옥처럼 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설명이나 이른바 “신정론”도 고통의 당사자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니 조용히 고통의 당사자들과 함께 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것만이 하나님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알리는 길일 것이다. 그 어떤 지옥의 공포라 하더라도, 함께 하려는 간절한 마음과 아픈 이야기를 듣으려는 진솔한 행동만이 그 고통의 시간을 느리지만 분명히 흐르게 만들 것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도, 하나님 없이 그들만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토록 치열하게 “포스트 제국주의”의 특징을 연구하던 학자들의 장광설이 무색해진 사건을 통해, “우리도 힘을 길러야 하는가? 우리도 제국이 되어야 하는가? 사회에서 더 이상 정의, 평화, 공존, 환대라는 단어는 허사가 되었고, 약육강식만이 남은 것인가?”라는 지옥의 담론을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들, 다시 말해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하나님 의식이 없는 지옥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사라졌고 한국에서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독교 제국”이라는 유령을 쫓아, 민주주의를 포기하면서까지 특혜와 법기술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이들과 하나가 되어, 세속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추한 모습들은 분명 지옥의 썩은 냄새를 떠올리게 한다. 정교일치의 구호와 선동을 통해, 배제와 혐오를 기반으로 이익을 도모하면서, 타인을 수단으로 대하는 처세술을 부린다면, 그들이 서있는 곳이 지옥이리라.
초월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다른 것으로 대체되는 시대에, 특히 지옥의 존재와 하나님 나라를 믿는 이들은 이제 믿음의 언어를 공공의 장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껏 외부에 대해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외쳤는지 모른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으며, 우리 안에서도 저마다 다른 방언을 쏟아냈는지 모른다. 이제는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야 한다. 그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도대체 하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를 진실하고 간절하게 묻고 답해야 한다.
높은 곳이 아니라, 지배하는 곳이 아니라, 빼앗는 곳이 아니라, 다수의 횡포가 있는 곳이 아니라, 남의 사연과 이야기에 귀를 닫는 곳이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알려야 한다.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대하며, 하나님을 의식할 때,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실 것이라고 전해야 한다. 지옥도처럼 변해가는 세상에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명제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은 그래서 의식의 차이 이상으로, 존재와 당위의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이 땅에 계시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알리며,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난으로 받아들이는 의로운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