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칼럼 #32 (2026.05.11)

 

아직, 한 사람의 중요성

 

김성희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사람 VS 제도.’ 세상이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롭게 운영되기 위해 무엇이 더 중요할까. 내가 받아온 공교육의 궤적을 반추해 보면, 제도보다는 ‘사람’을 강조하는 교육이었던 것 같다. 교회 교육 역시 구약의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다윗부터 신약의 예수님, 바울, 베드로 등에 이르기까지 인물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며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라인홀드 니버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통찰했듯, 개인의 도덕성과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집단적 이기주의를 견제하고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제도와 구조’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사람과 제도’는 서로 대립하는 선택지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두 개의 축이며, 그 역학관계를 성찰하는 일은 인간 삶의 필수적 과제로 다루어져야 한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도 우리는 사람과 정책, 그리고 그것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제도를 함께 살펴 우리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이 원리는 정치뿐 아니라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목회자 개인의 카리스마와 역량에 크게 의존하여 부흥을 이루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제도’의 측면에도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특정 권력자에 의해 좌우되는 구조가 아니라, 민주적인 운영구조와 투명성, 일관성, 공공성을 갖춘 제도가 필요하다.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 지도자 한 명의 ‘영적 능력’에만 달린 구조에서 벗어나, 구성원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영적 성장을 뒷받침할 제도의 정착이 시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내외 현실을 바라보면 우리는 여전히 ‘한 사람’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한 사람의 판단은 정책의 방향을 바꾸고, 한 사람의 언어는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며, 한 사람의 선택은 국제 질서의 흐름마저 흔든다. 역사는 아직 ‘한 사람’의 존재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대통령 한 사람의 외교 노선은 국가의 동맹 구조를 재편하고, 경제 정책의 선택은 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 정치 지도자 한 사람의 가치관과 리더십은 사회적 의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때로는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미거나 봉합하는 중심축이 되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 정치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지도자 개인의 성향과 판단이 한 국가를 넘어 국제 사회의 질서와 긴장 관계에까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 역시 몇몇 상징적 인물의 강한 목소리를 통해 전체의 이미지가 규정되거나 오해받는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결국 공동체의 얼굴이 되는 것은 사람이며, 시대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 또한 구체적인 사람의 인격과 세계관이다. 한 사람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이 된다.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이 무엇을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회의적으로 묻기도 하지만, 역사는 단 한 사람으로 인해 전쟁이 시작되기도 했고, 멈추기도 했으며, 한 사람 때문에 사회가 분열되기도 했고, 회복되기도 함을 증명해 왔다. 이제 인공지능(AI)은 인류문명의 새로운 전환점을 열고 있다. 그러나 그 문이 모두를 위한 미래로 이어질지, 아니면 ‘기술공화국’의 비전을 주창하는 소수의 기술 엘리트만이 번영하고 다수의 평범한 이들이 도태되는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 또한 교차한다(『기술공화국 선언』 알렉스 카프 외, 빅데이터닥터 역, 지식노마드, 202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삶과 지구적 미래의 방향타를 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그 기술에 윤리와 가치를 부여하는 한 사람(들)의 선택은 더욱 결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사람에게 주목하고, 사람을 선택하며, 끝내 사람을 통해 희망을 기다리는 이유다. 역사는 언제나, 그 시대를 책임지는 사람들의 영향력을 통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류가 전 세계를 휘몰아치고 있다. K-팝, K-음식, K-드라마와 영화, K-뷰티, K-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K-브랜드’는 이제 단순한 유행을 넘어 세계문화와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K-교회는 어떠한가? 오늘 한국 교회는 과연 세계 앞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으며, 어떤 가치로 기억되고 있는가. 정치적 양극화와 힘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교회 역시 그 거센 물결 앞에 흔들리는 듯하다. 대형교회 중심의 성장주의, 진영 논리에 갇힌 편향된 목소리, 사회와의 불통과 신뢰의 상실은 교회의 공공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한 사람’의 중요성을 믿기 때문이다. K-교회는 다시 ‘한 사람’을 길러내는데 여전히 집중해야 할 것이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그냥 두고서라도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나선 목자처럼,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목회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을 길러낸다는 것은 단지 신앙지식을 전달하거나 종교적 습관을 형성하는 일이 아니다. 그 한 사람이 성장하는 장(場)은 반드시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이 구현된 공동체여야 한다. 이기적 국가주의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국가 대표’를 길러내야 하는 교회는 배려와 공존, 소통과 공감, 용서와 화해,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고 경험되는 곳이어야 한다.

교회를 뜻하는 그리스어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는 ‘밖으로(~로부터)’의 전치사 ἐκ 와 ‘부르다’를 뜻하는 καλέω의 합성어로,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이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에클레시아는 시민들이 모여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던 시민 의회를 지칭하는 용어였다. 기독교는 이 세속적인 정치 용어를 공동체의 이름으로 사용함으로써 교회가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하도록 부름 받은 ‘주체적인 시민들의 모임’을 강조했다. 이제 K-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다시 세상 안으로 들어가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즉 κκλησία(세상 밖으로의 공동체)에서 εςκλησία(세상 안으로의 공동체,‘εἰς ~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실현된 ‘에클레시아’에서 성장한 진정한 ‘한 사람’들이 ‘에이스클레시아’에서 다시 만나 세상을 빛으로 인도하고 소금으로 보존하는 역할을 감당할 때, K-교회는 비로소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모범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한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나는 그 한 사람을 위해 무엇을 내어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