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성명서 (2025.10.4)
예장통합의 『퀴어 성서주석』 이단 규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장 정훈) 제110회 총회가 『퀴어 성서 주석』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결정은 단지 한 권의 책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성서를 다양하게 읽으려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이미 교회 안에 존재하는 성 소수자 그리스도인을 노골적으로 배제하는 행위이다.
1. 우리는 성서를 다양한 눈으로 읽는 전통을 지지한다.
성서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문화와 상황 속에서 새롭게 읽혀 왔다. 해방신학, 여성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생태신학 등은 모두 특정한 시대적 맥락과 공동체의 아픔과 희망을 반영한 성서 읽기의 결실이었다. 『퀴어 성서 주석』 역시 성 소수자의 시선으로 성서를 읽고 해석하려는 신학적 노력과 실천 중 하나이다. 이런 노력을 ‘이단’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교회의 해석학적 전통을 부정하고, 나아가 교회 안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2. 교회 안에 함께하는 성 소수자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 한다.
성 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엄한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례받은 우리의 이웃들이다. 교회가 성 소수자에 대한 신학적 해석과 그들의 신앙을 ‘이단’으로 낙인찍을 때, 우리는 함께 예배하는 그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복음이 배제와 혐오의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3. 주석서에 엄격하고, 극우주의자에게 관대한 것은 균형의 상실이다.
이번 예장통합 총회의 결정을 보며 우리는 심각한 모순을 보고 있다. 『퀴어 성서 주석』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이단’이라 규정하고, 한국교회의 공적 신뢰를 무너뜨린 극우주의자 전광훈 씨의 이단성 문제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 소수자와 관련한 학문적 시도에 엄격하면서, 권력과 결탁한 극우주의자에 대해 관대한 것은 교회의 일관성과 공정성을 무너뜨리는 처사이다.
4. 성 소수자를 마녀사냥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지금 세계교회와 학문 공동체는 퀴어에 대한 성서 해석을 진지한 연구와 신학의 한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를 두려워하며 성 소수자를 마녀사냥식으로 배제할 뿐 아니라, ‘이단’으로까지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국교회가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하지 못하는 해석학적 빈곤을 드러내며, 한국교회를 사회와 국제 학계로부터 스스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5. 진정한 복음은 생명과 해방의 소식이다.
한국교회는 혐오와 배제의 길이 아니라, 환대와 생명, 화해와 정의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성서를 다양한 시각에서 읽는 것은 교회를 혼란케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씀을 풍성히 하며 진리의 핵심으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예장통합 총회의 이번 결정을 강력히 규탄하며, 신학적 자유와 모든 그리스도인의 존엄을 지키는 교회의 길을 함께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우리는 성서가 전하는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에 앞장설 것이다.
2025년 10월 4일 한국교회와 공공성 포럼 회원 일동